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매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구약성경 시편 제46장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1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2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4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5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우리에게 풍경, 인물, 정물 화가로 알려진 가국현은 이번 전시에서 성당과 교회를 소재로 한 유화 작품과 드로잉(목탄, 파스텔) 작품을 선 보인다. 이전의 풍경 작품에서 성당과 교회를 묘사하긴 했지만 그것은 풍경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성당과 교회 만을 클로즈업 해 묘사하고 있다. 성당과 교회는 성체를 모시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국현의 이번 작품은 구약성경의 시편 제46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성경 구절은 오바마가 9·ㆍ11 테러 10주년을 맞아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낭독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종교개혁가였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재능을 지닌 성직자였다. 루터는 구약성경 시편 제46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인용해 그 유명한 코랄(Choral)¹⁾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했다. 이 곡은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집에도 실려있다.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교회 칸토르였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도 마틴 루터의 이 코랄을 인용해 칸타타²⁾ BWV³⁾ 80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종교개혁 기념 축일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다. 이 칸타타는 총 8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코랄 환상곡으로 루터의 원래 가사를 1, 2, 5, 8악장에 그대로 사용하고, 음악도 이 종교개혁 당시의 전투적인 정신에 어울리게 강렬하고 용감한 표현을 하고 있어 바흐의 많은 칸타타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6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7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8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강한 성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 좋은 방패와 병기 / 그는 우리를 엄습하는 모든 곤란에서 / 자유토록 우리를 도우신다. / 옛 사악한 적들은, 진실로 우리에게 지금 말한다. / 큰 권세와 큰 모략 그의 무서운 무장을 / 이 땅에서 그와 맞설 이가 없다. - 바흐의 칸타타 BWV 80의 1악장

모든, 하나님께로 난 자는 / 세상을 이기느니라. /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네. / 우리는 곧 무너질 것이다. / 그가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 경건한 자,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이가… / 그리스도의 피 묻은 깃발 옆에 있는 사람은 / 세례의 충실한 서약 안에서 / 영혼 중에서 영원히 이길 것이다. / 너는 물었느냐, 그가 누구시냐고? /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시는, 만군의 주로다. / 그리고 다른 어느 신도 없다. / 그 땅을 그는 반드시 가지신다. / 모든, 하나님께로 난 자는 세상을 이기느니라. - 바흐의 칸타타 BWV 80의 2악장

가국현은 이번 전시에서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몇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그간의 유화 작품에서 보여주던 원색의 화려한 컬러는 자제되고 깊은 느낌의 차분한 몇가지 색이 작품의 주를 이룬다. 특히 배경 처리에 있어 화려한 컬러를 트레이드 마크처럼 표현했던 것을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농익은 표현으로 바꿔 중후함을 더했다. 또한 전시의 한 축을 이루는 드로잉 작품은 가히 일품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작가 중에 천경자, 배동신, 월성 김두환 같은 분들이 뛰어난 드로잉 작품을 남겼는데, 가국현의 드로잉 또한 이들 작품 못지 않다. 서로 이질적인 목탄과 파스텔의 조화로운 드로잉 작품은 가국현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준다. 절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묵직한 느낌의 드로잉은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9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10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11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19

▲ 가국현, 내 주는 강한 성이요-12
60.6x45.5cm, 목탄 & 파스텔, 2020

가국현은 최근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작품을 게을리 한다거나 작품을 쉬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간 몇 년간 매진했던 “Filling & Emptying”의 첫번째 시즌을 무사히 마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Filling & Emptying” 시리즈⁴⁾ 작업은 대작의 간결한 구도지만 작가의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주제의 작품은 분명 작가에게 새로운 에너지와 열정을 보충해 주리라 생각한다. 작품 속 성당과 교회는 작가가 유럽 여행 때 틈틈이 찍어둔 사진 중에서 고른 것들이다. 여행 중 현장에서 작가에 의해 잡힌 순간적인 구도가 회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가국현은 크리스천이다. 2년전쯤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기독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성당이든 교회든 성체(聖體)를 모시는 같은 성소(聖所)인 것은 분명하다. 유튜브에서 바흐의 칸타타 BWV 80을 검색해 가국현의 이번 전시 작품과 함께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분명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¹⁾ 기독교의 예배용 찬송가
²⁾ 17세기 초엽에서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시대에 가장 성행했던 성악곡의 형식. 특히 바흐의 교회칸타타로 정점을 이뤘다.
³⁾ 바흐 작품 목록(독일어: BWV; Bach Werke Verzeichnis)
⁴⁾ 은은하고 질박한 아름다움,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순수함, 과장되지 않은 편안함, 평면적이면서 입체적이거나 입체적이면서 평면적인 마티에르(Matiere), 관조와 성찰, 소박함과 단순함, 비움과 채움, 함축(含蓄)된 형상과 절제된 표현과 같은 특징. 필자가 쓴 2015년 가국현의 개인전 서문 중 일부